📘 감정 에세이
《빠사삭 – 생라면을 씹던 날의 마음》
그날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라면을 씹는 소리가, 나 대신 울고 있었다.
아이는 상처받은 줄도 몰랐고, "축하받고 싶다"는 마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생라면을 씹으며 ‘빠사삭’ 소리를 친구 삼아, 울지 않기 위해 라면을 삼켰던 그날.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깊이, 원 없이 사랑해주고 싶었다는 것을.
■ 상실 이후, 살을 입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무너진 날, 나는 마음을 닫았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살’을 입기 시작했다.
단단한 갑옷처럼, 두터운 보호막처럼.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 그 다짐은 고스란히 내 몸에 새겨졌다.
나는 나를 잃었고, 소중한 어떤 것을 떠나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살을 빼보려 애썼지만, 마음은 더 고통스러워졌다.
빠져도 다시 찌고, 찔 때마다 나를 더 미워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속삭임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가장 어려운 소망이었다.
무엇을 해도 힘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선언했다.
“그래, 뚱뚱한 채로 살아보자.”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껴안기로.
예뻤던 과거의 나도,
뚱뚱하면 병이 생길까 두렵던 미래의 나도
모두 “지금 여기”로 데려와 마주 보기로 했다.
그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따뜻한 길이었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사랑을
그 자리에서 바로 줄 수 있었으니까.
■ 나와 친해진 생라면의 기억
그 여정 속에서 많은 ‘트리거’를 마주했다.
그중 하나가 생라면이었다.
다이어트가 잘되다가도,
그 생라면을 부셔 먹는 순간 모든 게 무너졌다.
속은 쓰리고, 몸은 붓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생라면을 찾는 것도, 마음이 하는 일이었구나.’
“너는 왜 그렇게 생라면을 좋아하니?”
나는 나에게 묻고 있었다.
그러자, 빠사삭—
그 익숙한 소리와 함께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 아무도 없던 집, 바사삭의 위로
전교 1등을 한 날이었다.
친구들은 축하해주었고, 선생님도 칭찬해주셨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 집은 조용했고
언제나 그렇듯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 어두운 부엌에서 나는 식탁 위의 생라면을 집어 들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라면을 부셔 먹었다.
‘빠사삭, 빠사삭’ 그 소리 속에 외로움을 외면하며
축하받지 못한 마음을 담아 삼켰다.
아마도 그 소리는
그날 내 곁을 지켜준 유일한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혼자 이렇게 배웠다.
“나는 축하받을 수 없는 사람인가 봐…”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인가 봐…”
그러나 그 소리는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너라도 있어서 고마워.”
“네가 나의 마음을 알아줘서, 정말 다행이야.”
■ 어린 아이가 꿈꾸던 장면
그 아이는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엔 이런 장면을 품고 있었을지 모른다.
정성껏 요리된 따뜻한 라면 한 그릇.
마음 놓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평화로운 시간.
누군가와 함께 앉아, 온기로 가득한 식탁.
아이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
조건 없이 라면을 먹는 그 장면—
그건 어쩌면 아이가 오래도록 꿈꾸던 사랑의 모습이었다.
■ 내 마음의 엄마가 되어주다
그래.
마음이 진짜 원했던 것은 그 따뜻함이었구나.
이제껏 위로와 사랑은
‘누군가로부터’ 받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엄마를 기다렸고,
떠나간 연인을 놓지 못했구나.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아픔을 알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나’였다는 걸.
너는 오랜 시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지금의 나는
그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말해준다.
"그래 괜찮아, 이제 말해도 돼.
내가 들어줄게.
외롭고, 슬펐지?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서 괴로웠지?
그래서 내가 너의 가장 가까운 엄마가 되려고 공부 많이 했어.
이제 여기, 너 혼자가 아니야.
사랑해."
🕊 마무리하며
살은 내 마음을 감싸고 있었다.
음식은 내 외로움을 위로하고 있었다.
생라면, 토스트…
그 아래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들이 숨어 있었다.
나누고 싶었던 사랑이 있었다.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감정은 마음이 건넨 이야기였다는 것을.
그러니 괜찮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조용히 빠사삭 울어주던 생라면처럼—
이제는 내가 그 아이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려 한다.
‘빠사삭.’
🍂 작은 통찰:
그날, 생라면을 씹던 아이는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고, 조용히 안아주길…
그리고 마침내,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엄마는
바로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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