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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무의식 정화

돈과 무의식 정화 3편 - 나는 왜 늘 주기만 할까

나는 왜 늘 주기만 할까 – ‘주는 것’에 숨겨진 무의식

나는 왜 항상 주기만 할까? 돈을 쓰는 건 익숙하지만, 받는 건 불편한 마음. 이 글에서는 '주는 것'을 반복하는 내면의 이유와, 그 안에 숨겨진 결핍과 무의식적 신념을 들여다봅니다. 주는 것이 사랑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보호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건강한 균형으로 나아가는 감정 정화의 여정을 안내합니다.

🔍 목차

돈으로 이루어진 하트와 황금 리본이 어우러진 상징적 이미지
이 이미지는 ‘돈’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에너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상징을 표현합니다. 하트 모양으로 구성된 지폐와 황금빛 리본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사랑을 통해 돈을 주고받거나, 돈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려는 심리를 나타냅니다. 무의식 속 억눌린 ‘받고 싶은 마음’과 그에 얽힌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이미지입니다.

1. 늘 주는 나, 왜 익숙할까?

누군가를 도와주는 건 기쁘고, 베푸는 건 따뜻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나는 왜 늘 주기만 하지?’라는 질문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한 느낌, 나만 소진되고 있다는 감정. 그건 단순히 습관이 아니라, 내면에 뿌리내린 무의식일 수 있어요.

2. ‘주는 것’은 사랑일까, 방어일까?

우리는 종종 ‘주는 나’를 좋게 평가합니다. 착하다, 배려 깊다, 따뜻하다… 하지만 무의식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나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먼저 줘야 해.” “나는 받으면 미안하니까, 그냥 주는 게 편해.” “내가 주면 관계가 끊어지지 않겠지.”
주는 것 안에 ‘사랑’이 담겨 있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도 함께 있는 거예요.

3. 나는 정말 기꺼이 주고 있었을까?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기꺼이’ 준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 두려워서 주기만 했던 것”임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나도 사실 받고 싶었는데, 받을 수 없었던 상황. 그래서 ‘주는 것’으로 사랑을 유지하려 했던 패턴. 그 모든 것이 무의식에 뿌리내린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묻고 싶어요.
“나는 정말 기꺼이 주고 있었을까?” “아니면 받아들여질까 봐 무서워, 먼저 주고 있었던 걸까?”

4. ‘받는 것’에 대한 저항, 결핍에서 오는 불균형

‘받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렵습니다. 누군가 내게 돈을 주거나 선물을 건넸을 때, 감사보다는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먼저 올라온 적 있으신가요?
그건 우리가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은 말하죠. “받으면 내가 나쁜 사람이야.” “내가 받을 자격이 없어.” “차라리 주는 게 안전해.”
이러한 감정 패턴은 결국 ‘나는 결핍된 존재다’라는 깊은 믿음을 강화합니다.

5. 진짜 주고받음이 회복될 때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모두 순환입니다. 진심으로 줄 수 있으려면, 나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의식에 숨겨져 있던 두려움과 죄책감을 바라보고, 받고 싶은 마음을 허용할 때, 비로소 진짜 ‘주고받음’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게 됩니다. “내가 주는 것도 사랑이었지만, 받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 실제 사례: “받고 싶은 마음을 허락한 순간”

저는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고, 식당에 가면 테이블을 세팅해 주고 주변을 살피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런 게 저라는 사람의 방식이었죠. 하지만 정작 제 생일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쑥스러워서 말을 못 했어요. 무의식 중에 받는 것이 어색했고,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삶을 오래 살았고, 저는 그게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식사 준비를 하며 이런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렇게도 챙기는데, 사람들은 왜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해줄까?”
그 순간부터 저는 서운하고 괴로웠어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애써 괜찮은 척하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그 괴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괴로움이 바로 저를 마음공부로 이끌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아플까. 왜 이토록 억울하고 서러운가.

깊이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어요.
“나도 챙김 받고 싶었어. 나도 주기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게 너무 수치스러웠습니다.
“받고 싶다니, 나답지 않아.” 그래서 또 억누르고, 모른 척하고, 무시했죠.

그런데 식사를 준비하며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그 마음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 너무 받고 싶었지만, 받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상대가 없었잖아."
“너무 받고 싶었구나.”
“몰라줘서 미안해.”
“이제는 알아줄게. 사랑해.”

그 마음을 마주하고 껴안았을 때, 비로소 저는 ‘주는 사람’에서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는 주는 것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이 되는 것 같아요.. 

받기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마음 상태는 참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정화 나무^^